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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잡담

크루세이더 킹즈 3 간단 소감

크루세이더 킹즈3의 타이틀. (사진 출처: 스팀)

 2020년 9월 1일, 크루세이더 킹즈 3가 발매되었습니다. DLC 장사로만 8년의 게임 수명을 늘려온 터라 후속작을 만들기에는 부담이 컸을 텐데 결국 나오긴 했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보다 잘 만들었습니다. 안그래도 세 번...의 부실한 게임 판매 사기를 쳐온 터라 신뢰가 없었는데 좋은 방향으로 기대가 배신당해서 기쁘네요.

 

세 번의 사기극. (사진 출처: 패러독스 위키)

 패러독스 인터랙티브의 대전략 게임은 악명높은 DLC 정책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누구도 처음부터 신작이 완성된 게임으로 발매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 한 것과 별개로 정말 그렇게 나오는 건 문제였죠. 스텔라리스, 하츠 오브 아이언 4, 임페라토르 롬에 이르기까지 역설사의 신작 구매는 속된 말로 '호구' 취급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스텔라리스는 바로 긴급한 3번의 대규모 무료 패치로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했고, 호이4 역시 내셔널 포커스와 배틀라인 시스템 등 새로 도입한 시스템들은 대체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간략해진 시스템은 캐주얼 플레이어들에게 어필도 되었지요. 마냥 박한 평가만 받을 게임은 아니었는데 단지 여러 차례 업데이트된(=DLC로 팔아먹은) 대전략 게임을 접한 플레이어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했을 뿐입니다. 두 게임 모두 꾸준한 업데이트(=DLC 출시)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이젠 정말 옛 말이 된거죠.

임롬진짜..

 아무튼 최근 발매된 게임들의 상태가 그 모양이라 크킹3의 소식은 기대보다는 각오가 더 먼저였습니다. 스텔라리스나 호이4와 다르게 비교될 전작의 게임 사이즈가 컸기 때문이죠. 그래서 DLC 몇 개 나올 때까지 묵혀둬야겠다고 별 기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마저 배신하고 생각보다 괜찮은 게임을 내줘서 당황스럽고 기쁘네요. 생각해보면 저 세 게임들도 당연히 이렇게 내야 했던 거 같지만.

 

 전작에선 DLC로 추가했던 많은 시스템들이 기본 게임에 탑재되어 있습니다. 각 문화권의 특징을 살려주는 고유 시스템, 종교 관련 시스템, 삶의 방식의 관심사, 자문회, 거룩한 분노의 여러 시스템, 불가사의, 중앙아시아와 심지어 아무도 안 하는 라자들까지. 당연히 100% 완벽하게 탑재된 건 아니지만 최소한 구색은 맞췄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엔진도 클라우제비츠 엔진으로 바꿔 턴렉도 줄어들고 해상도도 좋아졌습니다. 공식에서 한국어 패치를 지원하기 때문에 전작의 유저 패치보다 가독성이 훨씬 좋아진 것도 장점이죠. 새로 도입한 3D 포트레잇도 발전에서 빼먹을 수 없습니다. 외형 코드를 DNA라 부르던데 외형적 특징이 유전도 되고 그런다더군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튜토리얼이 처음부터 들어가 있었습니다. 후에 업데이트로 튜토리얼이 추가된 CK2와는 다르네요.

 

 하여간 새로 나온 역설사의 대전략 게임이니까 가볍게 로마부터 만들어봤습니다.

Eu4에서도 이렇게 수월했으면 좀 좋으련만. (사진 출처: 직접 캡처)

 업적 분류 난이도는 매우 어려움으로 되어있지만 비잔틴으로 만들어서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Eu4에선 비잔틴 할 때마다 지구를 넘어가며 플레이했는데 역시 리즈시절이 편하고 쉽고 강력하네요. 아마 이런저런 너프가 가해질 거 같으니 업적이 궁하신 분은 지금 후딱 깨는 걸 추천합니다. 눈 딱 감고 10시간도 안 걸려요.

S.P.Q.R.이 없어서 살짝 질렸다. (사진 출처: 직접 캡처)

 하지만 S.P.Q.R. 도 없고 그저 로마 재건만 업적으로 있어서 로마는 속주 회복하다가 멈췄습니다. 로마 문화도 없으니 더 할 것도 없고 귀찮네요.

 

 신작이라고 새로 추가된 시스템들도 맛봤습니다. 집결지나 구실로 봉신을 압박해 계약을 수정하거나 그런 것들 말이죠. 특히 집결지에서 바로 병사가 모여서 나오는 건 게임적 허용이지만 매우 편리합니다. 덕분에 전쟁이 덜 귀찮아져서 수월하게 업적을 딸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무장병의 성능과 집결지의 해산 집결을 이용한 부대 순간이동은 너무 강하고 편리한데 역설사의 패치 계획에도 상당히 높은 순위에 있을 것 같네요.

 

 스트레스도 빼먹을 수 없겠군요. 3D 포트레잇, 인생 관심사 선택과 더불어 가주 개인에게 조망하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입니다. 기존의 트레잇은 특성에 따른 버프,디버프와 그에 따라 관계도에 영향을 주고 간헐적으로 선택지를 제한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여기에 더불어 성격에 반하는 선택지가 스트레스를 준다는 건 가주 개인을 좀더 고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연심 어리거나 공정한 특성의 인물은 가혹하고 가문에 이득이 되는 선택지를 누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가 과하면 그에 따른 패널티도 생깁니다. 후반 가면 그냥그냥 뜨는 선택지만 누르며 시간을 빨리 감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에 지금 가주가 어떤 인물이고 뭘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가 같은 걸 좀더 고려하고 보게 되는 효과가 있네요.

 

 상속되는 땅과 가주의 교육 말곤 물려주는 게 없어 세대를 거듭하는 순간마다 별로 남는게 없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은데 이젠 가문 유산을 통해서 플레이어에게 가문이 성장하며 남기는 것도 있게 해줬습니다. 여전히 상속하며 땅이 갈리지면 속이 쓰리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부분이고 가문을 키운다는 느낌을 강화한 좋은 추가점 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역시 CK2의 방대함을 따라가기엔 부족합니다. 주요 DLC에 있던 시스템들을 넣어준 건 좋으나 콘텐츠의 분량이 턱없이 아쉽습니다. 시작 시점에서 세팅된 시작 연도도 867년과 1066년도뿐이고 여러 이벤트도 서유럽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게임이 제시하는 주요 가문으로 시작하면 좀 덜 할 텐데 직접 지도에서 나라를 고르면 고유 이벤트 같은 게 정말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옵션도 아직 없습니다. 데이터 상으로 초자연적인 트레잇들이 확인되긴 했는데 게임 내에서 접할 방법이 없습니다. 개발진도 처음엔 초자연적인 옵션을 배제한 채 출시한다 했고요. 역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이킹의 선조 기술을 전수받아서 유럽으로 침공해 오지도 않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서 모아야 할 유물도 없고요.

 

 그러다 보니 초반을 지난 중후반부터 게임의 동력이 많이 상실됩니다. 인물이 바뀌어도 이벤트는 거의 반복이고 어느 정도 세력이 고착화되는 시점에서 둠스택도 약하고 잉카도 안 오고 모을 유물도 없고 수행할 의식도 없으니까요. 물론 역설사의 대전략 게임은 모두 중후반 견제 시스템이 있어도 초반이 제일 재밌긴 합니다만 아쉬운 부분이죠.

 

 업적도 몇 개 없고 대부분 시작 지점의 가문으로 이루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역설사 대전략 게임은 자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며 플레이해야 하다 보니 업적 획득을 목표로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은근히 할 게 없습니다. 몇 개 있다고 있는 게 또 하고 싶은 거냐랑은 별개의 문제니 까요.

 

 결국 제일 큰 아쉬움은 분량인데 그래도 기본적인 뼈대가 역대 역설사 대전략 게임 중에선 제일 풍성합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나올 DLC도 기대가 되네요.

 

 이제 CK3의 발매로 CK2-EU4-VI2-HoI3로 이어졌던 전통의 라인이 IR-CK3-EU4-HoI4-SR까지 되었으니 다음에 기대해볼 게임은 EU5겠군요. 물론 이번 개발일지에서 북미 원주민에 대한 내용을 다루겠다고 한 만큼 아직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5를 기대하기에는 이를지도 모릅니다.

 

 혹여나 해서 덧붙입니다. 빅토리아라는 건 없습니다. 역설사에서 판매하는 PARADOX GRAND STRATEGY COLLECTION을 참고해보세요.

빅토리아같은 게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직접 캡처)